일러스트레이터 최정현(CJroblue) "일상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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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 들어선 그의 모습은 매우 인상 깊었다. 큰 키와 서글서글한 인상, 중저음의 낮은 목소리는 흡사 유명 모델을 떠올리게 했다.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 모른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항상 우리 곁에서 숨 쉬고 있었다. 달력, 잡지, 앨범 커버 등 우리 곁에서 외로움, 절망, 쓰라림 같은 아픔을 달래주는 치료제다. 

 

 

 

 Q. 인사

 

안녕하세요. 일러스트레이터 겸 페인터로 활동하고 있는 최정현입니다. 반갑습니다.

 

 

 

<과거>

 

Q. 언제부터 그림에 대한 꿈을 가지게 되었는지.

 

대부분 그렇겠지만 학생 시절 그림에 대한 꿈이 있더라도 디테일하게 카테고리를 나눠서 생각하지는 않잖아요. 저는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었어요. 이유는 만화같이 멈춰있는 것을 그리는 것도 멋지지만 애니메이션은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이잖아요. 움직이게 만드는 작업이 재밌어서 하고 싶었는데,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대부분 팀 작업인 경우가 많고 작업 시간도 많이 소요되다 보니, 제 성향과 안 맞았죠. 제가 생각한 걸 빨리 그려서 대중들과 공유하고 소통하고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렇게 작업을 하면 내가 먼저 지칠 것 같아서 일러스트 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됐어요.

 

 

 

Q. 중학교 때 혼자 태국 여행을 다녀온 걸로 아는데, 지금은 몰라도 이 때 당시에는 흔치 않은 일일 텐데.

 

해외가 아니더라도 어릴 때부터 잘 싸돌아다녔어요. 심지어 길을 찾고 집에 돌아올 능력이 부족한 어릴 때부터 혼자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다가 고속도로에 갇혀 본 적도 있어요. 중학교 때는 부모님의 제안으로 갔다 왔어요. 제가 그림을 좋아하고, 부모님이 이런 쪽으로는 개방적이셔서 남자니까 혼자 여행을 갔다 오라고 하셔서 3박4일 동안 갔다 왔죠. 첫 해외여행이었고 정말 재밌었어요. 단순하게 새로운 것을 본 것도 많지만 사건사고가 많았어요.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잘 적응했죠. 무식하니까, 모르는 게 힘이 됐었던 것 같아요. 돈을 뺏겼었는데, 겁은 났지만 사람이 혼자 남겨졌을 때 위기가 닥쳐오면 당황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대처를 더 잘하는 것 같아요. 돈을 훔쳐간 사람들한테 한국말로 욕을 했죠. 물론 돈을 다 찾지는 못했지만 다 경험이 되고 재밌었어요.

 

 

 

Q. 태국에서의 경험이 지금의 본인을 있게 했나.

 

제 인생을 흔들 만큼 큰일은 아니었지만, 작은 경험들이 모여서 사람을 구성하잖아요, 저도 이 당시에 느꼈어요. 나는 해외가 아니더라도 여러 곳을 다니면서 여러 가지를 보고 느끼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혼자 있는 시간을 되게 중요시 했어요.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외할머니, 할머니 손에서 자랐는데, 여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계속 혼자였어요. 그래서 외로움을 많이 타고, 지금도 많이 타는 성격이에요.

 

제가 하는 작업도 혼자 있는 시간을 중요시해야 하는 작업이다 보니 이런 이중성을 갖고 살아가는데, 여행이라는 것이 주는 장점이 혼자 생각을 정리하는데 엄청 큰 도움이 됐고, 시각적, 청각적 자극들, 모든 것들이 그림을 구성하는데 소재가 됐어요.

 

그리고 약간 방랑벽도 있는데, 이게 다르게 말하면 궁상맞은 느낌이에요. 남자 혼자 생긴 거랑 다르게 감성적이고, 여행지 가서 카페에 앉아서 혼자 본 것들 기록하고 이런 것들이 길어지면 너무 궁상맞아요. 마치 연애도 안했는데, 이별한 사람마냥 혼자 얘기할 사람도 없이, 풍경만 바라보는 게 웃길 수도 있고, 애늙은이 같기도 하지만 어릴 때부터 좋아했어요. 그렇다고 항상 말없이 다니는 건 아니지만, 여행이 끝난 뒤 혼자 호텔방에서 느끼는 정적 같은 게 외로움보다는 긍정적인 쪽으로 다가와요.

 

 

 

Q. 여행을 많이 다니는 편인가.

 

횟수로 따지면 많이는 아니에요. 물론 국내도 잘 돌아다니고 개인적으로 부산을 좋아해요. 시간이 된다면 당일에라도 내려가는 짓을 많이 했어요. 잘 돌아다니는 편이고, 해외는 일본, 홍콩, 호주 이 정도에요. 이게 제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죠.

 

 

 

Q. 독자들에게 추천해줄 만한 여행지

 

각자 세워놓은 계획, 금전적 여건에 따라 장소에 제한을 받게 되잖아요. 저는 부산이든, 홍콩이든 돈이 없어서 목적지가 바뀌는 것보다는 가고 싶은 곳을 먼저 정하면 어떻게든 돈을 모을 거라고 생각해요.

 

여행지에 가서 제가 즐겨하는 행동을 추천하고 싶은데, 유명한 곳은 한번쯤은 가는데, 저는 보통 서칭을 안하고 가요. 물론 메트로를 타는 법 같은 기본적인 건 하죠. 이런 건 준비하되, 어디를 가면 뭘 꼭 먹어야하고, 어디를 가면 뭘 꼭 봐야 된다는 건 너무 싫어요. 전부 일률적으로 거기만 가는 그런 것이 싫어서 이번에 홍콩 여행도 일주일 예약을 하고 날씨도 체크를 안 했어요. 아마 홍콩을 좋아해서 다녀오시니 분들 중에 6월에 가시는 분은 없을 거예요.

 

홍콩 사람들조차도 가장 덥고 습한 최악의 날씨라고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굉장히 좋았어요. 호텔에 짐 풀고 첫째 날은 ‘호텔에서 1시간만 걷자.’해서 삘 꽂히는 방향으로 걷다가 골목으로 들어가서 쌀국수도 먹고, 이런 걸 즐겨 해요. 그러다 중간 중간 유명한 곳에 가기도 하고, 여기서 오는 모르는 장소와 친구를 만들 수 있는 점이 더 매력적이에요. 혼자 여행을 가야만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Q. 학력을 보니 청강문화산업대, 한성대, 호주 그리피스 대학교를 중퇴했다. ‘3번이나’ 대학교를 중퇴한 데에는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

 

청강대는 입시를 안 보고 들어갔어요. 흔히 말하는 손들고 간 거예요. 사실 한국 예술 종합학교 애니메이션 학과를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준비했어요. 그 때만해도,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예술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학교였어요. 저도 가고 싶었고, 가고 싶었던 큰 이유는 첫 번째는 애니메이션을 하는 사람에게는 서울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학교의 분위기, 커리큘럼, 학교의 이름 때문에 꼭 가고 싶었고, 두 번째는 그 즈음에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았어요. 어릴 때부터 안 좋았는데, 그걸 인지하지 못한 거죠. 고 2때쯤부터 알게 되고 국립학교라서 퀄리티는 높은데, 학비가 저렴하니까 가려고 했었죠.

 

고등학교 입시를 칠 때도 운 좋게 높은 경쟁률 속에서도 붙었어요. 한예종도 1차에서 운 좋게 붙은 거예요. 전국의 학생들 중에서 50명 안에 드니까 어린 나이에 자만심이 하늘을 찔렀죠. 자만심과 자신감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한 것 같아요. 이 때 당시에 생각하기를 ‘이 학교까지 붙으면 소위 말하는 학력도 대박이다. 난 정말 멋있어 질 거야.’라고 생각을 하고 2차 준비를 안 했어요. 진지함이 사라진 거죠. 결국 2차를 떨어지고 방황을 했어요. 심지어 창피한 일이지만 한강에도 들어간 적도 있고... 그리고 청강대 애니메이션과가 생긴 지 얼마 안 돼서 좋은 고등학교의 자질 있는 친구들을 뽑아갔어요. 이 때 가게 된 거죠.

 

그런데 막상 대학교에 들어가니까 학생들이 수업에 안 나오는 거예요. 열심히 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아까 말했듯이 애니메이션은 팀 작업인데, 안 나오니까 진행이 안 되는 거죠. 저도 이렇게 되다보니 입시를 다시 해야겠다 싶어서 한성대에 들어갔어요.

 

청강대 입학 전부터 미술 학원에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한성대에 가니까 이미 돈은 벌고 있고, 갔더니 고등학교에서 배웠던 커리큘럼과 크게 다를 게 없이 느껴지고, 물론 지금 와서 생각한다면 수업도 수업이지만 더 넓은 인간관계를 배웠어야하지만 어린 나이였기에 당시에는 일을 더 중점적으로 하는 게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휴학을 하고 자퇴를 하게 됐어요.

 

그리고 군대 영장이 나왔는데, 생각해보니 고등학교 2학년 말부터 20대 초반까지 안 쉬고 일만 한 거예요. 그렇다보니 학비도 다 제가 내고, 지쳐있었어요. 군대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지만 스트레이트로 입대까지 하면 제 자신을 너무 혹사시키는 것 같아서 중간 1년만 쉬었다 가력 호주를 갔죠. 호주 그리피스 학교에 다니다가 군대를 안가고 나간 거라서 비자 문제가 있어서 중퇴를 하고 돌아와서 군에 가게 되었죠.

 

그 당시에는 대학에 대한 필요성을 못 느꼈고, 지금도 공부를 하고 싶은 욕심은 많지만 그게 꼭 대학이라고는 생각 하지 않아요.

 

아 그리고 이건 좀 딴 얘기일 수도 있는데, 요즘 SNS를 보면 어린 친구들이 아무것도 아닌 질문을 타인에게 하는 행위를 많이 하더라고요. 예를 들면 ‘매니큐어 살 건데, 뭐 살까요?’ 본인이 충분히 결정할 수 있는데, 이건 단순한 결정 장애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혼자 결정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저는 제 의도와 상관없이 혼자 결정해야 했어요. 부모님이 반대하거나 막는 건 없었는데, 혼자 진행해보고 부딪혀보고, 얻고, 잃는 걸 미리 경험해보니 호주에서도 어떻게 해서든 하면 방법이 나온다는 걸 깨달았고, 무식했기에 가능한 거였죠.

 

 

 

 

<미래>

 

Q. 내년부터 뉴질랜드에서 활동할 예정인데.

 

호주를 다녀왔기 때문에 가까이에 있는 뉴질랜드를 택했어요. 여러 가지 문화도 비슷하고 과거에는 어쩔 수 없이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항상 기회가 되면 다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동안 집안 사정이 안 좋아서 빚도 갚으면서 저 스스로 지쳐 있었어요. 그러면서 외국에 나갈 준비가 계속 딜레이 되고 있었죠.

 

그러다가 3년 정도 만난 여자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도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작년쯤 나가고 싶어 했는데, 제가 준비가 부족해서 이제 나갈 예정이에요. 초기 정착금이라던가, 이런 건 아직 부족해요. 여자 친구는 대부분의 여성분들이 그렇듯 꼼꼼하게 현실적으로 저축을 잘했는데, 저는 악착같이 모으는 스타일이 아니라... 조금 덜 모이게 됐지만 비행기 표는 끊어놓은 상태에요.

 

 

 

Q. 본인이 봤을 때 국내에서 본인은 성공했다고 보는가.

 

전혀 아니에요. 결론부터 말하면 유명해지고 싶어요. 호주에서 돌아와서 작은 목표들을 이뤄가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지금은 제 이름을 인터넷에 치면 나오지만, 몇 년 전에는 안 나왔어요. 이걸 목표로 삼은 건 아니지만요. 직업에 분야를 떠나서 유명하다고 느끼는 척도가 얼굴만 봐도 알아볼 정도가 돼야 된다고 생각해요. 누가 봐도 ‘저 사람 텔레비전에서 봤어.’라고 나올 정도가 돼야죠. 예전에 우연찮게 강남역을 가는데 어떤 젊은 여성분이 같이 가는 친구한테 ‘저 사람 일러스트 작가잖아.’라고 하는 걸 우연히 들었어요. 이 때 표정관리를 최대한 했는데, 너무 좋았어요. 이 때 뭘 느꼈냐면, 진짜 유명해지는 것은, 그림으로, 얼굴도 알려져야 하지만, 그림이 유명해진만큼 제 수입도 올라야 진짜 유명해진 거라고 생각해요.

 

인지도 면에서도 아직 스스로 홍보하는 일이 많아요. 제가 가만히 있어도 기사가 나갈 정도가 되면 좋겠죠. 이렇게 인터뷰를 편하게 하지 못할 정도로... 무슨 말인지 알죠?(웃음)

 

 

 

Q.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해외로 나가는 것에 대한 걱정은 없나

 

걱정은 당연히 있죠. 30대가 되고 느끼는 건데, 꼰대식의 말일지라도 맞는 말이 있잖아요. 20대 초반에는 몰랐는데, 이제는 자고 일어나도 피곤하다라던가... 30대가 되고 고민이 많아졌어요. 20대에 비해 겁이 많아진 거죠. 항상 결론을 생각하게 돼요. 더군다나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고, 그런 걸 싫어했고, 지금도 싫어해요.

 

혼자 나가는 거면 덜 하겠는데, 이제는 결혼을 약속한 친구와 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이건 한국에서 만든 기준이기는 한데, 서른이 넘었는데 돈, 차, 집도 없고 외국 나갔다 1년 만에 돌아오면 그 걱정을 안 할 순 없었어요. 이 고민은 항상 갖고 있었는데, 처음 고민이 들고 10분 정도 생각을 해보고, ‘내가 바보구나, 왜 또 이런 걱정을 하고 있지?’라고 생각했어요.

 

아인슈타인이 말했죠. ‘평생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라고... 나가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고, 그렇다고 헛된 희망만 품고 가는 건 아니니까... 지르는 게 답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보면 큰 걱정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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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Q. 본인의 그림을 작가로서 평가했을 때의 점수.

 

100점 만점에 60점 ~ 70점. 가장 큰 이유는 그림의 완성도, 퀄리티보다 색감과 느낌이 제 그림은 대부분 따뜻해요. 차가운 색을 써도 따뜻한 색감이 나요. 보시는 분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주고 싶은 그림이다 보니, 그런 식으로 노력을 하고 있어요. 감성의 점수랄까...

 

 

 

Q. 어느 블로그에 ‘최정현 작가의 그림에는 커피, 담배, 연기(향기로 생각하겠다.)가 많다.’는 글이 있었다. 좋아하는 담배와 커피는.

 

커피는 아메리카노, 담배는 말보로 레드. 담배는 이제 한 달 이내에 끊어야 할 것 같아요. 향기도 맞고 연기도 맞아요. 그런 의도로 넣은 거예요. 커피 잔에서 나오는 김, 연기와 배경의 연기가 동일해요. 어느 하나를 정해서 그린 건 아니고, 예전에는 그 연기가 지금처럼 화면을 가득 채울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림 안의 분위기를 표현하는 직접적 요소로도 쓰이지만, 내용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그림 안에서의 흐름과 공기의 방향을 읽을 수 있잖아요. ‘남녀의 분위기가 어떻게 흘러가는구나.’ 모든 분위기를 표현하고 싶어서 쓰고 있어요.

 

담배는 피는 장면보다는 담배 캐릭터가 들어간 경우가 많아요. 어릴 때 연애를 하고 아픈 이별을 했을 때 담배를 시작한 거라서, 이별과 사랑에 대한 아픔을 위로해주는 녀석으로 그려 넣은 거예요. 지금은 행복한 사랑을 하고 있지만 항상 있는 거죠. 지금은 뺄까말까 고민 중이에요. 만약 금연하게 되면 그런 그림이 그려지겠죠. 인사하면서 떠나는...

 

 

 

Q. 다른 분야에 도전할 생각이 있나.

 

웹툰 제의가 많이 들어왔는데 거절한 이유는 웹툰은 그림을 잘 그려서 되는 분야가 아니에요. 제가 잘 그린다는 얘기가 아니라, 스토리 작가 분과 함께 만들어 가야하는 부분이고 웹툰에 대한 노고를 겪어보진 않았지만 주변에 많은 분들이 하시다보니 워낙 잘 알아서, 제가 함부로 도전하고 싶은 생각을 안 해요.

 

제 분야를 더 발전시키는데 중점을 두고 있어요. 그림으로 연관돼서 콜라보 작업을 시도하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제가 시도할 여건이 된다면 하고 싶어요. 아직은 일러스트 분야에 최선을 다 할 거예요.

 

 

 

 

Q. 대한민국에서 예술가로 살아가기 어려운 점.

 

이건 단순히 사람의 문제라기보다 어쩔 수 없는 문화와 교육의 문제인 것 같아요. 너무 빠른 시간에 발전을 했기 때문에 예술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배울 기회가 없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알기로 요즘 중학교, 고등학교 과목 중에 예체능이 없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어요. 있어도 1학년 때만 있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수능에는 필요가 없으니까 뺏겠죠. 이걸 듣고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예전에는 그림 그리는 사람을 환쟁이라고 부르면서 무시했는데, 지금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겉으로 드러나는 대우가 전보다는 좋아진 것 같지만, 그걸 바라보는 대중의 인식이 다 바뀐 건 아니라서...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이 취업을 하기 위해 15년 정도 엄청난 준비를 하잖아요, 예술가들도 마찬가지에요. 이 가치를 금액으로 환산하지 못하지만, 그렇게 인지를 안 하는 거죠. ‘그림은 그리기 쉽구나.’ ‘가수니까 노래 부르는 게 쉽겠지.’ 이런 인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힘들 것 같아요.

 

그림을 그리고, 그림이 팔리면 그 돈으로 재료 사고 생활비 하고, 그림을 그리는 게 순환인데, 문제는 이게 안 돌아가요. 그림을 그려서 올리면 ‘와 예쁘다.’ 폰으로 찍고 그냥 가요. 그러면 끝이에요. 전시를 하면 대관료부터 시작해서 모든 게 빚이 생기고, 작가는 다음 작품을 하기 위해서 또 빚을 내고, 또 다음 전시회도 빚을 내요. 금전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소수잖아요.

그 분들은 논외로 두고.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음악 하는 분들도 그렇고, 그걸 받아들이는 대중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가치 있게 준비했구나.’를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전공이 아니더라도 남학생들 체육시간 좋아하잖아요. 우리나라 학생들 아침부터 앉아있는데, 체육시간 만이라도 움직여야 건강에도 좋고, 음악도 그 시간에 부르고 풀어야 좋은데 그걸 금지시키는 것 자체가 너무 황당했어요. 이 친구들은 대학에 가서도 공부하고 취직하고, 세상을 무슨 재미로 살지, 너무 슬펐어요. 이런 악순환은 한 명이 나서서 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게 바뀌려면 10년 정도 걸릴 것 같은데, 제가 생각한 건 이거에요. 전혀 정치적 의도는 없는 이야기에요. 작년 세월호 때 모두가 충격을 받았잖아요. 시위에 한 번 간적이 있었는데, 그 뒤에 못 나갔던 게 차비가 없어서 못 갔어요. 이거 때문에 고민을 했어요. ‘무리를 해서라도 내가 저기에 나가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외치는 게 맞는 걸까, 아니면 마음속으로 항상 생각해두되 내가 할 수 있는 자리에서 뭔가 보여주는 게 맞는 걸까.’ 결론은 내 분야에서 성공해서 같은 한 마디를 해도 파급력 있는 사람이 돼야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돈이 없으니 교통비를 빌려서 가는 것도 의미는 있겠지만,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아무리 사람이 많이 모여도 예전만큼의 힘이 안 생기기 때문에 힘을 만들어야 된다고 느꼈어요.

 

돈이 많으면 힘을 만들기 정말 쉽겠지만요. 돈이 많으면 미술 대학 졸업하고 카페 겸 갤러리를 차려서 전시하고 파는 거예요. 실제로 이런 루트가 돌아가요. 돈이 많다는 건 아버지 지인들도 돈이 많겠죠, ‘김씨 아들이 그림 그린다는데, 사줘야지.’ 이러면 100% 다 팔려요. 이런 친구들이 있어요. 그리고 대다수의 예술가들은 이런 사람을 보면서 꼭 성공해야겠다는 동기부여를 갖죠. 비유를 해서 말했지만 우리나라는 이 격차가 좁혀지지 않아요.

 

외국에 있을 때 경험했던 건 외국은 예술에 대해 공부를 오랫동안 진지하게 배운 학생들이 더 잘하기 때문에 음악이든 그림이든 대하는 태도가 달라요. 아이가 엄마랑 손을 잡고 걷다가 좌판에서 파는 무명작가의 그림이 예쁘면 가격이 어떻든 간에 사요. 가격에 대해 충분히 지불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하죠. 어떤 실험 영상에 개그맨 장동민씨가 그린 그림을 갤러리와 지하철에 놓고 가격 비교를 한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심리적으로 그렇게 느낄 수는 있지만, 유명 화가가 그린 게 아니더라도 맘에 든다면 충분히 살 가치가 있다는 거예요.

 

이런 인식이 자리 잡기위해 대중들이 바뀌길 바라는 것보다 제 자리에서 유명해져서 이런 이야기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풀어서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공통 질문>

 

Q. 그림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하는 궁극적인 건 제 위로에요. 저 스스로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저를 지탱시킬 수 있는 행위고, 보시는 분들이 공감하고 위로를 받았으면 해서 그리는 거예요. 계속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40 ~ 50대가 되어서 이런 비슷한 꿈을 갖고 활동하는 젊은 후발주자 분들이 한국에서 활동하기 조금이나마 좋은 환경을 만들려는 목표가 있어요.

 

그렇게 되려면 결국 제가 열심히 해서 유명해져야 하는 부분이고, 가장 궁극적인 목표 중 하나는 집안 사정이 좋지 않은 어린 친구들을 후원하고 싶어요. 이건 웃긴 이야기인데, 후원은 절대 남의 손에 맡기고 싶지 않아요. 왜냐면 아무도 못 믿겠어요. 저는 되게 긍정적인 녀석인데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슬프게도 후원금에 대한 것은 아무도 못 믿겠어요. 뉴스에서도 많이 봤고, 적십자 사건, 세월호 성금만 봐도 너무 많이 보니까 다 필요 없고 제가 직접 손에 쥐어주든, 뭘 해서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요.

 

재단이라기보다는 작은 공간을 만들어서 강사 분들이 무상으로 교육을 해주는 것들을 하고 싶어요. 이건 완전 장기적인 거라서 급하지 않아요. 이 목표는 쑥스럽기도 해서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면 말을 안 하는데, 꼭 하고 싶어요. 어린 친구들 손재주가 정말 좋고, 정말 잘 그리는데 자기가 잘 그리는지 몰라요. 문제는 아까 말한 교육환경으로 들어가니까 미술을 접할 기회가 없어지는 거죠.

 

 

 

Q. 5년 후의 모습.

 

5년 이면 36살인데... 변하지 않을 건, 똑같이 철없고 똑같이 농담하기 좋아하고, 성격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대신 5년 후에는 최소 책을 3권 낼 거예요. 제 이야기와 그림이 담긴, 지금 하나 쓰고 있는데, 원래 목표는 출국하기 전에 출간을 하고 싶었는데, 정확히 모르겠어요. 그 때가 되면 뉴질랜드가 아니더라도 어딘가에 정착해서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큰 꿈보다는 지금 뉴질랜드를 가기 전에 갖고 있던 목표들을 이루고 안정기에 들어서고, 첫 인터뷰에 했던 얘기처럼 인터뷰를 이렇게 편하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웃음) 그때가 되면 인터뷰파인더와 한 번 더 재밌게 인터뷰를 했으면 좋겠네요.

 

 

 

Q. 미술학도들에게 한마디.

 

가끔 중학교 같은 곳으로 진로상담을 가는데, 항상 하는 얘기에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게 죄는 아닌데, ‘모든 친구들이 국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걷고 말하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그 뒤의 선택은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단점 때문이라기보다 많은 경험과 시야를 넓히라는 의미에요. 꼭 외국이 좋다는 게 아니라 일단 국내에서 경험을 쌓고, 이 경험은 경계가 없는 거죠.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모든 경험이에요. 그리고 미술을 공부하는 친구라면 책을 읽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책을 좋아해요. 다독하는 건 아닌데, 항상 즐겨 읽어요. 여성잡지, 만화책, 소설 등 가리지 않고 읽어요. 정말 도움이 되고 있어요. 웬만하면 종이 책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종이 책을 읽었으면 해요.

 

많이 읽으라는 건 변하지 않는 조언이에요. 영화든 뭐든 많이 보는 것도 중요해요. 경험하는 걸 겁내지 말고, 부모님 말 듣지 말라는 거예요. 어떤 의미인지 아시죠?(웃음) 하라는 대로 해서 되는 건 없어요. 부모님 말씀 중에 중요한 것도 있지만, 본인이 원하는 건 경험해서 ‘이래서 하지 말라던 거였구나.’라고 깨달으면 되는 거예요. 해보고 깨닫는 거지, 누군가 먼저 얘기해서 결론지어 버리면 스스로 벽을 만드는 거예요.

 

제발 미친 척하고 아무거나 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만큼 그리는 것도 중요하죠.

 

 

 

Q. 최근 읽은 책 추천

 

얼마 전 이석원 작가님의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읽었어요. ‘보통의 존재’라는 책을 읽고 이 분에게 반해버렸어요. 산문이 주는 특별함이 있어요. 자기 얘기를 써놓다 보니 책을 쓴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파악하게 되는 게 있어요. 물론 독자의 착가일 수도 있지만, 이 사람과 가까워진 느낌도 들어요. 옆에서 듣는 기분이에요. 간접적으로 삶을 체험하는...

 

요즘 읽기 시작한 건 김훈 작가님의 ‘라면을 끊이며’에요. 매번 책을 읽지는 않아요. 한동안 안 읽을 때도 있어요. 두세 달 정도 안 읽다가, 그림을 그릴 때 답답할 때 열이 받고, 서점을 털러가죠. 한 번 빨아들이는 시점이 있는데, 이외수 작가님 팬인데, 신작이 나와서 이거까지 읽으면 12월은 풍족하게 보낼 것 같아요.

 

 

 

본인은 아직 성공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지금 충분히 성공하고 멋있다.

 

항상 불특정다수에게 저를 설명할 때 하고 싶은 얘기는 당연히 진지한 면도 있겠죠. 엄청 집중해서 그림을 그리는 순간을 보면 멋있다고 느낄 수 있어요. 노력한 부분만 모아서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하겠죠. 결국에는 이 모든 게 자연스럽게 녹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무언가 독하게 준비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그러면 지쳐서 떨어져 나가요. 강요를 한다든가 가둬두면 못 견뎌요. 약간 한량 같은, 풀어놓으면 더 잘하는 스타일이에요. 책을 4 ~ 5개월 안 읽다가도 꽂히면 일주일에 몇 권씩 읽기도 해요.

 

그림도 올해 목표로 잡았던 게 하루 한 점 완성이었어요. 며칠 전에 세보니 400장이 넘었더라고요. 이걸 강제적으로 했다면 못 했을 거예요. 누군가 절 봤을 때 슈퍼맨을 떠올렸으면 좋겠어요. 클라크 켄트가 평소에는 엄청 찌질하잖아요. 근데 평소에도 쫄쫄이 입고 멋있게 돌아다니면 멋이 떨어질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사람이고 싶어요. 킥킥대고 헛소리하면서 재미없는 농담하고, 혼자 카페에서 인스타를 하지만, 할 때는 하는 거죠.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은 제 노력을 알지만, 대중들에게는 처음부터 그게 직접적으로 드러나기보다 여유로운 사람처럼 비춰지지만 저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알아가면서 진지한 면까지 알게 된다면 저만의 매력적인 진짜 모습이 더 어필되지 않을까 싶어요. 겉으로 멋있으면 별로잖아요.(웃음)

 

 

 

Q. 최정현에게 그림이란?

 

저를 치료해주는 약이에요. 그건 변하지 않아요. 성격이 차분한 편은 아니에요. 욱하고 급하고 소리 지르는 성격이에요. 사회생활과 금전적 문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그림이 아니었다면 분명 안 좋은 쪽으로 빠졌을 거예요. 그림을 그리는 시간동안 잡념이 사라지고 차분해진 것 같아요.

 

 

 

 

Q. 추후 활동 계획.

 

1월 4일 출국을 하면 2~3개월은 준비를 할 거예요. 디자인 일러스트 관련 직장과 함께 갤러리 쪽을 컨택할 예정이에요. 뉴질랜드에 가더라도 지금 쓰고 있는 책의 초고를 완성해서 출판사와 컨택 후 내년에는 출간을 할 예정이고, 아마 제목은 ‘일상의 온도’가 될 거에요. 산문집이에요. 얼마 전 전시회가 ‘가을의 온도’였는데, 이런 류의 궁상맞은 걸 좋아해요. 제 인터뷰 내용처럼 삶에서 느꼈던 것, 경험, 제 생각을 정리해서 그 당시의 그림들과 실어 넣을 거예요.

 

 

 

인터뷰 후 이야기.

 

혹시 ‘아프니까 청춘이다.’ 읽었어요? 저는 다 읽고 열 받아서 던졌어요. 책 초반에 등장하는 인생을 24시간에 비유하는 건 정말 좋았어요. 쓰신 분에 대해 잘 모르니까 함부로 욕하거나 비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정말 그 책을 쓴 사람이 누구건 간에 제 입장에서 느낀 건 ‘왜 고생 별로 안했는데, 고생한 것처럼, 다 아는 것처럼 쓰지?’였어요. 독자 중 한명인 저는 증오스럽고 같잖았어요. 예를 들면 본인의 이야기를 하되 조언을 하지 않고 그냥 이야기를 산문처럼 풀었다면 모르죠. 거기에 숟가락 얹듯 아파본 것처럼 얘기하는 게 싫었어요.

 

그럼 의미에서 저는 더더욱 누군가 그렇게 느낄까봐 조심스럽게 쓰고 있어요. 만약 제가 똑같이 돈이 없는 이야기를 소재로 풀어나갈 때 징징거리는 내용을 쓰는 게 아니라, 겪을 때는 힘들었지만 현재는 아무렇지 않잖아요. 그 느낌으로 쓰는 거거든요. 누군가 읽고 ‘나랑 비슷하다.’ 라고 느끼고 용기를 얻을 수 있을거고, 고생을 안 해본 분들도 멋있다고 느낄 수 있는 책이라서, 이걸 보고 욕을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욕을 못하게 할 거예요.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는 게 아니라서,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그 정도 팔렸다면 저는 그 책을 동기부여 삼고 있어요. 농담반 진담반으로요. 그 책이 20대, 30대에게 이슈가 됐다면 저는 현 시간의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니까, 50세에 쓴 자서전이 아니라 동시대의 이야기니까, 두 가지 반응이 나오겠죠. 엄청나거나, ‘나 같은 사람이 있어.’라고 위로 받거나.

 

허지웅 작가님 되게 좋아하는데, 그 분도 자신이 경험한 결 늘어놓으면서 충고하지 않아요. 자신이 겪은 걸 스스로 결론을 낼 뿐이지. 그 분 이야기에 공감하고 더 좋았어요. 책을 통해서 제 그림의 팬을 확보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책만큼 불특정다수에게 어필할 수 있는 컨텐츠도 없다고 생각해요.

 

 

 

Q. 마무리 인사.

 

점점 모든 분들이 사시는데 빡빡해지고 힘들어지고 있는데, 식상하게 ‘희망을 잃지 말자’, ‘힘내자’ 보다는 힘들면 일탈도 하시고, 대신 건강, 생명을 가지고 장난은 하지마세요. 힘들지만 어떻게든 버텨내는 삶을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모든 분야의 모든 분들, 내년에는 나라, 법에 상관없이 개개인들이 조금이나마 더 위로받고 안정된 건강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고, 올 한해 다들 고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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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정현 작가 블로그 : http://blog.naver.com/cjhbcl47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cjroblue/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CJroblue

 

 

 

인터뷰/ 안지수

사진/ 이민우

편집/ 안지수 jisoo4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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